정말 속이 터지도록 느리던 전개가 마침내 빨라지기 시작했다. 1회부터 8회까지를 전반부, 9회부터 16회를 후반부로 나눈 것 같았다. 전반부에서는 부부 간의 갈등에 집중하느라 외간녀의 정체를 철저히 배제했는데, 그것 때문에 상황을 전개하지 못한 것 같았다.
보통 드라마에서 남편이 바람을 폈을 때, 아내는 남편을 탓하기보다 남편의 불륜 상대를 탓했다.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 외간 여자에 대한 원망이 컸다. 그래서 드라마가 한 남자를 쟁취하기 위한 여자 대 여자의 대결 구도로 갔다. 이 드라마는 그런 공식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남편들은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하면서, 바람피우는 상대 여자의 정체를 끝까지 숨겼다. 결혼 생활이 문제적이지도 않았다. 부부 간의 애정도 여전했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돈독했고, 돈도 충분했고, 사회적 지위도 높았고, 고부 갈등이나 주변 인물들과의 충돌도 없었다. 어느 것 하나도 불륜을 합리화 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행복한 세계에 갑자기 이혼이라는 랜덤한 불행이 찾아와 부부 관계를 박살내는 모습을 드라마는 천천히 묘사했다.
그런 점이 새롭긴 했지만, 남편들이 도대체 어떤 상대에게 어떻게 홀렸는지 전혀 보여주지 않아서 매우 답답했다. 남편들의 대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를 맴돌았다. 남편과 아내가 자신의 감정만 서로에게 쏟아냈고, 정작 일의 진척이 없었다. 드라마는 모노 드라마에 가까웠다. 이러다가 “로스트(Lost)”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처럼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끝날 것 같았다.
이번에 피비로 개명하신 임성한 작가께서 불륜을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았다. 본명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제작비도 많이 들었고, 홍보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정체를 드러내셨을 수 있다.
작가님께서는 막장 드라마로 유명했다. 드라마는 재미있었고 시청률도 높았지만, 윤리적인 문제로 방송통신 심의 위원회(방심위)의 징계를 자주 받았다. 그래서 MBC에서 영구 퇴출된 후 은퇴하셨다. 임성한 작가는 은퇴했고 신인 작가 피비가 데뷔한 것 같았다.
이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현재까지 방심위의 징계를 받지 않고 있다. 드라마는 불륜을 그리면서도 품위를 지키고 있다. 불륜의 외적 요인을 배제하고 내적 요인에 집중하고 있다. 이제 중반을 넘겨 후반부로 진입한 이 드라마가 16회까지 남은 분량을 어떻게 채울지 기대된다. 신인 작가 피비의 불륜 드라마는 어떨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