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America에서 우연히 봤는데 재미있었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공부를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많이 공감이 되었다. 나도 미국 석사까지 했을 정도로 공부를 좋아했고 공부를 많이 했지만, 공부는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나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셨고 공부가 직업인 교수님들도 여전히 공부가 힘들다고 하셨다. 책상에 앉아서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손에 익을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쳐 쓰다보면 정수리가 따끔따끔하고 사타구니가 근질근질하고 등이 뻐근하다. 그러면 미녹시딜을 바르고 클로트리마졸 연고를 바르고 카이로프랙틱을 받고 코어 운동을 해야 한다. 이걸 무시하고 책상에 앉아만 있으면 머리가 빠지고 습진이 생기고 흉추 디스크가 온다. 공부는 건강에 좋지 않다.
여기에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들까지 있으면 공부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것들이 있다. 안 그래도 힘든 공부에 그런 쓸데없는 것들까지 덕지덕지 붙어있으면 고통이 배가 된다. 그런데 그런 방해 요소들이 MBC 공부가 머니에서 내 학창시절과 비슷하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나는 적어도 그런 것들은 빼줬으면 한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일단 공부가 괴롭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공부를 재밌게 하는 건 공부 도입부에 약간 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대부분의 시간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공부의 고통을 줄여서 건강도 챙겨야 한다. 운동을 할 때도 발목이 아프거나 허리가 아프면 즉시 중단하고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하는 것처럼, 공부가 너무 괴로우면 즉시 중단하고 잠시 쉬어야 한다.
- 요즘 수학에서 서술형 문제가 많이 나오지만, 그 전에 단답형 문제부터 많이 풀어야 한다. 쉬운 게 손에 익어야 어려운 것도 풀 수 있다. 서술형으로 바뀐 맥락은 아마 한국식, 아니 한국만 그런게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까지 포함한 아시아식 교육이 너무 시험 점수가 높게 나오는 요령에만 집중하는 폐혜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요령만 부리기보다는 시간을 들여서 우직하게 쉬운 것부터 빨리 푸는 연습을 했으면 한다.
- 창의력 함정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술형이나 논술형이나 수행평가가 창의성을 본다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도 여전히 형식에 맞춰서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것도 주입식 교육이 통하고, 나는 중상급 수준에 다다르기까지는 주입식 교육이 좋다고 생각한다. 상급 이상에서 창의성을 발현하는 건 솔직히 답이 없다. 주어진 것보다 더 잘하는 것인데, 노력은 할 수 있겠지만 그 다음은 타고난 재능과 운에 좌우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체념해야 한다. 그저 나에게 재능과 운이 있기를 바라며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재능과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쯤에서 적당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 독서 교육은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책을 매우 좋아해서 아주 많이 읽었고 지금도 많이 읽고 있지만, 그게 공부는 물론 인생에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할 말이 많아지긴 하는데 그게 장점인지는 모르겠다. 특히 청소년 권장 도서로 나오는 것들을 억지로 읽게 하는 건 정말 나쁘다고 생각한다. 책은 읽고 싶은 걸 읽어야 한다. 읽기 싫은 걸 읽는 건 괴로우니까,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고통은 최소화했으면 한다.
- 아이가 산만할수도 있다. 아니 나는 오히려 아이들이 차분한게 더 이상하다. 아이가 집에서 맨날 책 읽고 공부만 하고 있다면 나는 오히려 걱정이 될 것이다. 물론 아이가 너무 산만하면 부모로서 통제해야겠지만, 적당히 산만한 건 정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 공부가 아니라 공부 외적인 것이 싫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학교 선생님이 너무 못 가르친다거나, 아니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셔서 옛날 기준으로 고리타분한 말씀을 많이 하신다거나, 아니면 학원 선생님이 너무 시험 점수를 올리는 요령만 알려줘서 정작 중요한 핵심을 빠트린다거나, 선생님도 잘 이해를 못해서 부정확하게 알려준다거나 해서 공부에 의욕이 꺾일 수 있다. 아니면 선생님이 특정 학생을 그냥 싫어해서 살살 괴롭힐수도 있다. 선생님도 사람인만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봐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래도 수학 선생님이 싫다고 수학을 포기할 순 없으니까, 적어도 공부 자체와 공부 주변의 다른 것들을 분리해서 쓸데없는 것들은 떼어냈으면 한다. 그러는데 부모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마흔이 다 되가는 나이에 아이도 없으면서 이런 얘기하는게 주제넘게 보이기도 한다. 나도 정작 내가 부모의 입장이 되면 이렇게 얘기를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만약 아이를 가진다면 이렇게 키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