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구두, 헨젤과 그레텔

결혼 후 8년간 5번 이사했다. 그 중에 3번은 한국이었고, 2번은 미국이었다. 이삿짐을 싸는데 책만 20박스가 나와서 책을 줄이기로 했다. 전자책이 있는건 전자책으로 사고 종이책은 팔거나 버렸다. 전자책이 없는 건 스캔해서 PDF로 만들었다. 그렇게 수백권을 스캔했다.

그게 아직도 남아서 스캔을 하는데, 요즘은 주로 아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나 화집을 스캔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남겨뒀던 이유는 종이책의 화질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스캔을 잘 하면 되지만, 스캔 전문업체에 맡겼더니 자동 보정을 해버려서, 일부러 플랫한 색감을 냈는데 그걸 비비드하게 올려버려서 아내가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그걸 한장 한장 집에서 공들여 스캔하다보니 아직까지도 남은 것들이 있다.

그것도 그렇고 너무 소중해서 차마 버리지 못한 책들도 있다. 특히 그림책이나 화집은 그 현물 특유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에 더욱 버리기가 힘들어보였다. “이와사키 치히로”의 1968년 작 “빨간 구두”, “앤서니 브라운”의 1981년 작 “헨젤과 그레텔”도 그랬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팔자를 한탄하며, 마지막까지 아껴뒀던 책들을 하나 하나 버리고 있다.

아무튼 스캔을 하며 옛날 동화를 다시 보니까,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교회를 다니며 정숙했던 소녀가 어느날 섹시한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데, 너무 신나지만 그 춤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다가 가시덤불에 상처가 나고 해서, 도끼로 자기 발을 잘라달라고 해서 빨간구두에서 벗어난다.

동화를 비롯한 작품에서 춤은 완곡한 의미의 섹스다. 문란함의 상징이다. 영화 “엑스 마키나(2015)”에도 빨간 조명 아래에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미래 로봇 이야기에서 섹스 로봇이 너무 자주 나와서 지겨웠는데, 이렇게 춤으로 표현하니까 조금 신선했다.

하여튼 이 동화의 교훈은 문란한 생활을 하면 발을 자른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원해서 잘라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섬뜩한 교훈이다. 이 동화를 만든 사람이 문란한 생활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남이 강제로 자르는 것도 아니고, 무려 자기가 스스로 발을 잘라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문란한 생활 자체는, 많은 전제조건이 깔려야겠지만, 괜찮다고 본다. 빨간 구두를 신고 신나게 춤을 추다가도, 많은 자제력이 있어야겠지만, 멈출 수 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안 하면 되고, 가시덤불에 찔려 상처가 나지 않으면 되고, 굳이 발목을 자르지 않아도 된다. 문란함과 자제력은 어렵지만 둘 다 동시에 가능하다.

한편 헨젤과 그레텔은 빨간 구두와 다르게 섬뜩했다. 일단 부모가 아이들을 숲에 버리고 온다. 고려장은 노인을 버리지만 이건 아이를 버린다. 아니 어떻게 부모가 아이를 버릴 수 있지?

그리고 아이들은 숲에 혼자 사는 독신 여성에게 거두어진다. 이 독신 여성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먹여서 포동포동하게 살찌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부모가 보고 싶어서 부모에게 돌아간다. 부모가 얼마나 떨떠름했을지, 독신 여성이 얼마나 실망했을지 눈에 선하다.

그런데 정작 천벌은 부모가 받지 않고 독신 여성이 받는다. 그녀의 죄라면 정상 가정을 이루지 않고 아무도 없는 숲 속에 집을 짓고 제빵을 좋아하며 애들을 맛있게 죄라면 죄일 것이다. 게다가 이것도 어른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죽인다. 위의 빨간 구두와 마찬가지로,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이런 해석은 특별한 게 아니라서, 찾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 책 “황홀한 사기극 – 헨젤과 그레텔의 또 다른 이야기”도 독일에서 1963년에 나왔고, 1987년 영화화, 2003년 한국어 번역, 그리고 MBC 서프라이즈에 소개되기도 했다.

https://ews1016.tistory.com/1287

https://www.youtube.com/watch?v=rMG9jz_ef78

물론 이런 해석을 하기 시작하면 원작의 재미가 떨어지니까 적당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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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acdo

Kyungwoo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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