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 북한 사투리 방은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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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의 북한 사투리 방이 재밌어서 아내와 함께 4시간을 넘게 들었다. 빠져들었다. 북한 사투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고, 각자 자기의 가상 북한 캐릭터를 만들어서 말하니까 롤플레잉을 하는 것 같았다. 클럽하우스 프로필에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링크가 있는데, 이걸 보면서 현실 캐릭터와 가상 캐릭터를 비교하고 접목하니까 더욱 재미있었다.

게다가 모더레이터도 훌륭했다. 너무 과장해서 말하면 “침착하라” 하면서 감정을 낮췄고, 욕설을 쓰면 “비속어 쓰지 말라” 하면서 수위를 낮췄다. 대화가 겹치면 “순서를 지키라”며 발화자 수를 제한했고, 북한 사투리를 잘 못하면 “공부 더 해오라”며 발화자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나름의 질서가 생겼다. 이걸 못하는 방이 많았고, 그래서 재미가 있어도 오래 듣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이걸 잘해서 오래 갔다. 방이 너무 붐벼서 1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5분 정도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모더레이터도 한 8시간을 연속 진행하며 화제를 이어갔다.

하지만 참여자가 많아지고 폭이 넓어지자 문제가 생겼다. 북한 사투리 방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내 아내 또한 북한 사투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 가벼운 비하라고 지적했다. 아내가 클럽하우스에서 처음 말을 한 순간이었다. 청취자에서 발화자로 승급한 순간이었다.

아내는 나와 같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볼 때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드라마는 물론 매우 재미있었다. 또한 드라마 제작진도 지금까지의 다른 한국 드라마들에 비해 북한 사람들을 비하하지 않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 드라마가 1부에서 8부까지 전반부를 북한 편, 9부에서 16부까지 후반부를 남한 편으로 균형을 잡은 것도 그랬다. 마지막 결말 또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 스위스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도 북한 사람들을 코미디로 소비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군인들이 남한의 선진문물에 당황하는 모습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이 드라마의 강력한 에너지도, 남한 사람이 북한에 있을 때보다 북한 사람이 남한에 있을 때 신분의 격차가 더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후반부 남한 편에서 더 극적인 전개가 가능했고, 시청률 또한 더 높았다. 북한의 사회적 지위가 남한에 비해 낮기 때문에 가능한 드라마였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투리 농담은 사회적 신분의 격차를 이용한다. 특정 인구 집단의 두드러지는 특징을 전형화해서 공감을 자아낸다. 만약 그 특징이 다른 인구집단의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재미도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격차가 재미를 만든다. 그래서 그 사회적 격차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이 잠재적인 비하인 것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전형화하는 것도, 여성을 전형화하는 것도, 성소수자를 전형화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면 그 전형화하는 대상이 놀려도 괜찮은가? 그래도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재벌 2세를 놀린다면, 재벌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거나 약하게 받는 부조리함이 있다면 이를 이용해서 비하해도 괜찮다. 북한 사람을 놀리더라도, 북한 사람을 놀리는 남한 사람의 부조리를 보여준다면 괜찮다. 백인 남성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보여주면서, 그 백인 남성의 멍청함을 부각한다면 괜찮다. 이렇게 많은 전제를 깔아서 정치적 균형을 맞춘다면 가능하다. 나는 이걸 지적 곡예(intellectual stunt)라고 부른다.

미국의 많은 코미디언들이 이런 지적 곡예를 한다. 이게 위험할수록 더 재밌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욕을 먹는다. 특히 백인이 흑인을 놀린다던가 해서 선을 넘으면, 경력이 끝장난다. 다시는 코미디를 하지 못한다. 돈 아이머스가 그랬다. 정말 위험한 직업이다.

“사랑의 불시착”도 기존에 비해 많은 노력을 해서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북한 사람의 신분의 격차를 이용한 드라마는 위와 같이 지적 곡예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안 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클럽하우스의 북한 사투리 방도, 모더레이터가 통제를 잘 하면 괜찮겠지만, 그런 지적 곡예도 가끔 실패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의 공개방은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클럽하우스 시스템에서 통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 사투리 방에 실제로 북한 분께서 들어오기도 했다. 진짜 북한 분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그랬다.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들어왔다. 그들 중에 불편함을 느낀 분도 있었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분도 있었다. 예민한 정도가 다를 수도 있고, 남한과 북한이 서로 존중한다는 사회적 맥락이 깔려서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이슈화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 이렇게 특정 집단에서 특정한 맥락과 전제를 깐다면, 그 안에서는 그런 농담이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고 시간이 흐르면 그런 맥락과 전제가 깨질 수 있다.

그래서 모더레이터 Eric님은 더 이상 북한 사투리 방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코미디로 재벌 2세 캐릭터 방을 만들었으나, 북한 사투리 방 만큼 흥행하지는 못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코미디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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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acdo

Kyungwoo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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