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땐 미쳐 알지 못했지?
처음 패닉 1집을 들었을때의 감상이다. 단지 '달팽이'라는 멜로디 좋은 발라드를 부르는 그룹이라는 생각으로 패닉 1집을 들었을때 나의 느낌은 경악 그 자체였다. 온 몸을 짜릿하게 타고 흐르는 그 소름. 그것은 바로 이 그룹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 그룹 뭔진 몰라도 크게 망하거나 크게 뜨겠구나.
즉 내가 본 패닉은 그야말로 가능성의 집합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져도 크게 벌어지겠구나 하는 불안한 소용돌이였고, 이 사람들은 엄청 평범해지거나 엄청 이상해지거나. 모 아니면 도.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 후 2집이 3집이 나오면서 내 예상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2집은 정말 이상했고 3집은 너무 평범했다. 그 후로 쪼개진 둘은 정말로 평범해졌고 처음 패닉 1,2집에서 보여주었던 막나가는 카리스마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공익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이적 2집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는 패닉 1,2집 시절의 후회로 들린다. 그땐 미쳐 알지 못했지. 미쳐서 온갖 말도 안되는 음악이랍시고 하면서 지랄하던 그때. 그땐 그랬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과거에 대한 회상, 추억, 후회.
그래서 패닉 4집이 안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이적이 그때 미쳐서 패닉 1,2집 같은 괴작을 낼 수 있었던 걸까? 내 생각은 다르다. 내 생각은 그때 이적의 옆에 김진표가 있었기 때문에 패닉 1,2집이 나올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적과 김진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적은 그저 혼자 나오기 뻘쭘해서 동네 후배 한명 데리고 나온거고, 김진표도 동네 형이 음악 좀 한다길래 꼽사리 껴서 콩고물이라도 받아 먹으려고 했던 거지. 이런 불순한 의도로 모인 둘의 그룹 패닉은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었고 항상 삐걱거렸다.
이 삐걱거림에 패닉의 매력이 있었다. 사실 작곡이야 이적의 몫이었고 김진표는 어디 끼여들 틈도 없었다. 간주부분이 있으면 랩을 하는 식으로 겨우 끼여넣었지만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녀석 랩만 없으면 딱 완성도 있는데, 괜히 랩 넣으니까 이상해지고 그렇잖아. 맘에 안들어. 그래서 패닉의 음악은 항상 뭔가 아귀가 안 맞았고 뭔지 몰라도 부족해보였다.
그래서 솔로로 쪼개진 지금의 음악은? 그때와 다르다. 완성도 매우 높다. JP4나 이적 2집을 들어보면 어디 군더더기를 찾을 여지가 없다. 아주 깔끔하게 잘 만들어놨다. 하지만 패닉때같은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덜걱거림, 그로 인한 파격이 없다.
즉 혼자 있을때의 이적과, 김진표라는 뭔가 음악할 마음은 있는데 실력은 딸리는 녀석이 옆에 있을때의 이적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닉은 음악계에 큰 흠집을 낼 수 있었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룹이란 그런 것 같다. 누군가 곁에 있기에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 락그룹도 보면 3명 4명씩 하지만 실제로 작곡하는건 거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솔로로 나와서 작곡한다면, 그룹 할 때같은 음악이 나올까? 아니다. 사람은 곁에 누군가 있는 것 만으로 다른 사람이 되니까.
DJ DOC을 보자. 난 처음부터 DJ DOC에서 들을건 이하늘의 랩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결혼해서 애까지 딸린 유부남 김창렬. 점점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 그리고 뚱뚱해가지고는 맨날 헐떡거리는 정재용. 역시 비중이 없지. 그렇다고 해서 이하늘 혼자 솔로로 나간다면 지금과 같은 음악이 나올까? 아니다. 이하늘이 DJ DOC 사람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티격태격 하면서 지금과 같은 이하늘의 음악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주위사람들의 영향을 잘 활용한 사람으로 신해철을 들 수 있다. 신해철은 자기 자신은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간파했는지, 항상 다른 사람과 같이 음악을 했다. 무한궤도도 그랬고 특히 NEXT가 그랬다. 그 후로도 모노크롬이니 비트겐슈타인이니 노땐스니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의 음악성을 자기가 이용해먹으려는 (자기 표현으로는 배우려는) 모습을 보였으나, 역시 옛날 NEXT같은 맛이 요즘에는 없지.
NEXT 시절 신해철은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아니 멤버들 보고 이 부분 작곡해오라고 하면 말을 안 들어. 보다 못해 자기가 다 만들고 그랬다고. 맨날 게으르고 말도 안 듣고. 하지만 그런 갈등 속에서 NEXT의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항상 하하 호호 화목한 속에서는 BSB 같은 음악밖에 안 나와.
그러니 이적씨도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다시 파란만장하던 과거로 돌아가서 이리 부딫시고 저리 부딫치면서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긱스도 너무 화목하지 않았어? 지금도 다른 세션맨들과 너무 화목하게 지내지? 그래서 인기도 어느 정도 적당히 있고 말이야. 즐거운 시대라 잊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파워풀하다는 걸. 이 세상 노래의 80%가 이별 노래인게 왜 그렇겠어. 사람은 밝은 감정보다는 어두운 감정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이야. | |hit:1253|200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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