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수행가가 해 볼 40개의 단문묘사
원 배포처는 http://cistus.blog4.fc2.com/
한글 출처 http://kindgost.egloos.com/1393246
00. 이름과 사이트명을 말해 주세요. 또, 괜찮으시다면 무언가 한마디.
xacdo의 작도닷넷. 사랑과 평화를 온 세상에 뿌리리.
글은 불완전하지만 가장 많은 내용을 빠르게 담을 수 있는 매체다.
01. 고백 (告白)
마침내 고백할 타이밍이 왔다. 나는 작은 입술을 움직여 조심스레 말했다. "나 실은.. 트랜스젠더야."
02. 거짓말 (虛)
"사랑해" 라고 그녀는 내게 거짓말을 했다. 나도 그녀도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거부하기에 그 거짓말은 너무도 달콤했다.
03. 졸업 (卒嶪)
그는 나를 찬 후에도 한결같은 태도였다. 마치 나와 사귄 것은 연애공부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이젠 나라는 학교에서 졸업한 것처럼 보였다.
04. 여행 (旅)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새로운 것을 보는 것,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 가보지 못한 곳에 가 보는 것. 이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역시 맨 마지막, 여행을 꼽을 수 있겠다.
05. 배우다 (學ぶ)
돌이켜보면, 아무리 괴롭고 힘들던 기억들도, 지금 와서는 인생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 그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삶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06. 전차 (電車)
전차의 규칙적인 진동이 내장을 뒤흔는다. 이미 2번을 토했기에 더 이상 역겨움은 올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불쾌함만은 온 몸을 가득 휘감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2시간이 남아있다.
07. 애완동물 (ペット)
나는 벌써 다섯번째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다. 첫번째는 집을 나갔고, 두번째는 병 들어 죽었고, 세번째는 버릇이 나빠서 다른 집을 줬고, 네번째도 몸이 약해 죽었고, 다섯번째는 솔직히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별 수 없이 기르고 있다.
08. 버릇 (癖)
아침마다 똥을 누는 버릇은 일부러 만든 것이다. 일단 아침에 억지로라도 똥을 누면 습관이 되어서 매일 아침마다 똥이 나온다. 그러면 하루 종일 가벼운 속으로 생활을 할 수 있다.
09. 어른 (おとな)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래도 조금은 비참하고, 조금은 가혹하고, 조금은 메마르다. 딱히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어른이 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10. 식사 (食事)
아침 7시, 정오 12시, 저녁 6시. 배고픔은 아무때나 오지만, 식사시간은 정해져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식사시간이 아니면 기다려야 한다. 반면 배가 불러도 식사시간이 되면 일단은 밥을 먹어야 한다. 평소엔 그럭저럭 견딜만 하지만, 오늘같은 날은 유난히 견디기 힘들다.
11. 책 (本)
50년은 족히 되었을 책들이 구수하게 책 삮는 냄새를 내며 조용히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세로쓰기가 되어있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나 이전의 수많은 대학생들이 나와 똑같은 강의를 들으면서 수도 없이 펼쳐보았을 책이다.
12. 꿈 (夢)
유치원때,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하지만 국민학교에 올라가면서 현실적으로 과학자는 힘들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타협안으로 내놓은 것이 발명가였다. 하지만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고, 중딩 고딩을 거쳐 대딩이 되기까지, 나의 꿈은 꾸준히 자꾸만 작아졌다.
13. 여자와 여자 (女と女)
한국은 유달리, 여자와 여자간의 스킨쉽이 자연스럽다. 커플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닌다던가 팔짱을 낀다던가. 남자와 남자가 그러고 다니면 바로 게이 취급을 받을텐데. 남자로서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14. 편지 (手紙)
요즘같은 시대에, 새삼스럽게 편지라니,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허겁지겁 편지를 뜯어 보았다. 군대 있을때 이후로 편지를 받아보는 건 참 오래간만의 일이다.
15. 신앙 (信仰)
그는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을 밝혔다. 이런 곳에서 신앙을 밝힌다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기독교에 대해 안 좋은 추억이 있는 우리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16. 놀이 (遊び)
섹스는 최고의 놀이다, 라고 가수 박진영은 말했다. 실제로 직장인의 64%가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섹스를 꼽기도 했다.
17. 첫체험 (初體驗)
처음 내가 롤러코스터를 탄 것은 중학교 2학년때의 일이다. 학교 소풍때 억지로 떠밀려 탔는데, 나는 너무 겁을 먹어서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2번이나 타고 말았다. 나중에 돌아오니 안전손잡이를 잡았던 팔에 알이 배겨 있었다.
18. 일 (社事)
"정말로 좋아하는 건 취미로 가지고, 그 다음 걸 직업으로 가지세요." 밤 늦게까지 엉킨 업무를 수습하면서, 나는 그녀의 충고가 떠올랐다. 내가 이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새삼 다행으로 느껴졌다.
19. 화장 (化粧)
그녀의 화장한 모습은 아름답다. 언젠가 화장을 안한 맨얼굴을 보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그녀의 화장한 모습만을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20. 분노 (怒り)
험한 욕을 하는 손님을 앞에 두고도,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애써 화를 참으며 손님을 달랬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회사 내규대로 처리하면 끝이다. 나도 이렇게 변한 내 자신에 내심 놀랐다. 둔감해진건지, 무심해진건지, 포기한건지는 모르겠지만.
21. 신비 (神秘)
"자, 이 수정구슬을 보세요." 마녀는 시선을 수정구슬로 향했다. 조금씩 뒤틀린 기포가 에머랄드 빛으로 반짝였다. 약 1분간 마녀의 유도를 따라 계속 쳐다보자 현기증이 나면서 신비로운 형체가 구슬 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22. 소문 (うわさ)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세일즈맨처럼 접대용 미소를 지었다. 워낙 밝은 표정이라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무슨 소문을 듣고 찾아온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면에 이렇게 완벽한 미소를 보니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긴장이 되었다.
23. 그와 그녀 (彼と彼女)
그와 그녀는 벌써 7년째 연인 사이지만, 아직까지 잔 적이 없다. 스스로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 조차도 그들의 연애 진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느껴진다. 그래도 간간히 키스는 하는 모양이다.
24. 슬픔 (悲しみ)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녀는 한참을 울었다.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녀의 슬픔은 영화 때문일까,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 때문은 아닌 것 같다.
25. 삶 (生)
"인생을 즐기냐?" 우리가 공부를 안 하고 놀고 있으면, 선생님은 항상 이 말로 우리를 혼냈다. "삶은 즐거움이 30%, 괴로움이 70%야. 이 비율은 변하지 않아. 너희가 아무리 즐거움의 퍼센트를 늘리려고 해도 소용없어. 그만큼의 괴로움이 나중에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26. 죽음 (死)
"그래서 죽을 뻔 했다니까!" 좌중은 웃었지만, 다음 순간 바로 침묵했다. 그만큼 죽음은 생각 이상으로 가까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7. 연극 (芝居)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과 악수를 나눌 때가 되서야, 나는 할아버지 분장을 한 사람이 전에 술자리를 같이 했던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연기라는 건 정말 대단하구나, 새삼 감탄했다.
28. 몸 (體)
뇌도 결국엔 육체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사실 생각이라는 것도 복잡한 형태의 육체적인 활동일 뿐이다.
29. 감사 (感謝)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기도를 마친 나는 언제나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30. 이벤트 (イベント)
그곳에서는 상실의 시대 온리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미도리의 평소 성생활을 담은 SM물이라던가, 나오코와 레이코의 레즈비언 물이라던가 하는, 말도 안되는 동인지들이 40여편 가까이 진열되어 있었다.
31. 부드러움 (やわらかさ)
디저트로 나온 티라미스 케이크는 정말 일품이었다.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이 입 안을 가득 채우니 세상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32. 아픔 (痛み)
아랫입술에 라브렛 피어스를 끼우고 앤틱풍의 체인 귀걸이를 연결했다. 노래를 부를 때 입술이 움직이면 찰랑찰랑 하는 것이 묘한 매력을 풍겼다. 문제는 마이크에 스칠때마다 짜릿한 전기가 흘러서 때론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는 것.
33. 좋아해 (好き)
그는 내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변명하기로는 사랑이라는 불완전한 말에 자신의 감정을 담을 수 없다나?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못해도 좋아한다는 말은 하는 걸 보니, 단지 쑥스러워서 그런 것 같다.
34. 옛날과 지금 (今昔/いまむかし)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내가 사는 곳은 도시가 되어갔다. 옛날에는 볼 수 없었던 싸움질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의 인심은 자꾸만 삭막해져갔다.
35. 갈증 (渴き)
진열장 너머로 새로 나온 갈증해소음료가 보였다. 겉에 인쇄된 보아의 사진을 보자 나는 이상하게 갑자기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충동적으로 사서 마신 그 음료에서는 보아의 맛이 희미하게 났다.
36. 낭만 (浪漫)
유행이 한참이나 지난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요즘은 아무도 안 쓰는 GW-BASIC을 공부하는 그를 보자, 나는 21세기의 대학가에서는 사라져버린 낭만이 다시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37. 계절 (季節)
우리나라에 뚜렸한 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특히나 노숙자들에게는 저주와도 같은 것이다. 추운 겨울이 되면 이 많은 사람 중에 25%는 얼어 죽을 것이다.
38. 이별 (別れ)
그녀의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떠났다. 그녀는 들뜬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물론 그녀가 가는 곳이 그리 먼 곳도 아니고, 핸드폰으로 연락도 되고, 헤어진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를 바래다주는 내 마음은 마치 그녀와 이별이라도 한 것처럼 공허한 느낌이었다.
39. 욕 (欲)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무적인 인간관계가 늘어나면서, 나는 어느순간 욕을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목구멍까지 욕이 올라오지만, 뻔뻔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능력이 내게 생겨버린 것이다.
40. 선물 (贈り物)
그녀는 금전적인 가치보다 선물의 의미가 중요한 거라며, 돌멩이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그래서 나는 한달 후 그녀의 생일 때 똑같은 돌멩이를 어렵게 구해서 그녀에게 선물했다. 당연히 그녀는 화를 냈다.
헥헥.. 다섯시간 걸렸다.
써놓고 보니 하나하나가 소설의 씨앗을 가지고 있구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