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2021)

영화 “올드”(2021)가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작년에 예고편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났다. 고립된 해변에 갇힌 사람들이 빠르게 늙어가는 이야기였다. 몇 시간만에 노인이 늙어 죽고, 아이들이 성인이 된다. 어떻게 끝날까 싶어서 원작 프랑스 만화 “모래성”(Sandcastle, 2013)을 아마존 킨들로 사서 봤는데, 예상하기 어려운 결말이었다.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반전 영화 “식스 센스” 감독이 좋아할 만 했다. 하지만 과연 이런 결말을 헐리우드 영화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 잊고 있다가 잊고 있다가 마침 넷플릭스에 올라왔길래 아내와 함께 봤다.

일단 시작이 지루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호화 리조트와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너무 길게 풀었다. 그래서 고립된 해변에서 사건이 시작하기까지 무려 20분이나 걸렸다. 이런건 거두절미하고 5분 안에 흥미로운 사건을 일으켜야 하지 않았을까? 자세한 설정이야 차차 풀면 되고.

그래서 20분만에 겨우 예고편에서 재미있게 봤던 부분이 시작했는데,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물들과의 관계와 상세 설정을 한참이나 더 풀었다. 덕분에 영화는 원작 만화에서 언급이 되지 않거나 모호했던 부분들을 더 이해하기 쉽게 해줬다. 하지만 그런건 굳이 몰라도 되는 정보들이라 여전히 지루했다.

그래서 영화가 중반이 넘어가서야 비로소 다음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여기서 흑인과 아시아인이 하나씩 나오길래, 과연 누가 먼저 죽을까 생각했다. 이런 스릴러 장르에서 헐리우드 영화들은 나름 인종의 다양성을 위해 곁다리로 흑인, 아시아인을 하나씩 넣는데, 그냥 마지못해 넣는 정도라서 별다른 역할도 없어서 꼭 초반에 죽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그래도 흑인이 먼저 죽을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아시아인을 똘똘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죽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놀랍게도 그렇게 되었다. 아내와 한참을 웃었다. 그나마 나아진 점이라면, 흑인이 좀도둑질 등의 범죄를 저질러서 죽는 건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아시아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영웅적인 도전을 하다가 죽었다는 점 정도였다. 앞으로는 좀 흑인과 아시아인도 후반부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하여튼 중반이 넘어서야 이 영화의 메인 설정인 “고립된 장소에서 하루살이처럼 빠르게 늙어간다”는 걸 모든 인물들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이후로는 영화가 속도감이 붙었다. 나는 특히 노화를 묘사하는게 재미있었다. 정신병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늙으면서 폭력적이 되고, 골다공증이 있는데 칼슘이 부족해서 점점 등이 굽고, 뼈가 부러져도 잘 붙지 않고, 노안이 와서 앞이 잘 안 보이고, 청력이 떨어져서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고, 이혼을 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던 부부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다 잊고 다시 화목해진다. 아이가 성숙하고, 남녀 관계를 가지고, 출산하고, 사랑하고, 슬퍼한다. 이 모든 것들이 하루살이처럼 덧없이 흘러간다. 도저히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절망 속에서도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며 늙어 죽는다. 마치 파도에 모래성이 부서지듯이. 그래도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는다.

여기까지가 원작 만화의 결말이었다. 만화가 인상적이었던 점은, 처음엔 분명히 스릴러로 시작해놓고, 마지막에는 인생을 관조하는 태도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그 많은 떡밥들이 사실은 맥거핀이었다. 그래서 떡밥이 회수되지 않고 끝난다. 이것이 영 찜찜하면서도 나름의 울림이 있었다.

그래도 영화는 이 만화의 결말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원작에 대한 존경의 표현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이 영화는 예술 영화가 되지, 헐리우드 오락 영화는 아니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20분을 사족으로 덧붙인다. 여기서 기껏 쌓아왔던 감정선이 다 무너지지만, 헐리우드 영화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라고 다 이런 건 아니다. 내 생각에는 프랑스 영화 특유의 허무하고 관조적인 태도를 헐리우드 영화의 휴머니즘으로 한번 더 풀어 낸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 물론 그러기는 정말 어렵겠지만.

하여튼 영화의 결말은 앞부분의 떡밥을 대부분 해소하고 끝났다. 찜찜한 부분이 거의 없이 깔끔하게 끝났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면 “그렇군”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여운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마지막 20분을 제외하고 봐도 괜찮다고 본다. 영화가 거기서 멈춰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머지 20분은 쿠키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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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acdo

Kyungwoo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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